60여년을 살다보니, 생사(生死)
여부는 고사하고 얼굴조차 가물가물한 친척과 친구들이 많다.
아니, 이름조차 잊고 기억 속에서 사라진 사람은 더 많으리라. 가까웠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를 떠났고, 보충(?)되어야 할 새로운 만남은 거의 없었다. 다른 인생을 살 뿐인 그들을 애써 찾을 특별한 이유도 없다. 성장을 멈춘 나무의 가지 치기만 하고 있는 꼴이라고 할까?
그래서 나의 대인 관계는,
내가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부분이다. 속된 표현으로 하면,
‘go man go, is man is’가 나의 방정식이었나 보다. 만남과 헤어짐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다시말해서 팔자소관 (八字所管) 으로 돌리련다. 팔자 소관이 영어로 가장 흡사하게 해석되는 이스라엘의 말인 ‘이 또한 지나가라라 (This, too, shall pass away)’ 처럼,
갈테면 가고 말테면 말고…
사족(蛇足 – 뱀다리: 필요없는 말) 한마디!
많은 부모는, 자신이 못이룬 것과 부족함을 자식에게 바란다. 그래서 나도, ‘대인 관계’를 강조하며 자식을 키웠다. ‘박사 학위를 받고 NASA 에서 일해도,
남과 어울리지 못하면 아무 짝에 쓸모없는 수백명 박사중 하나일 뿐 성공은 없다’라고 수없이 말했고…
‘자식 잘 키운 비결이 무엇이냐?’고 누가 물었을 때,
‘공부보다 대인 관계가 성공을 …’ 이라고 말하려다가 꾹눌러 참았다.
기분 좋으라고 물어본 한마디 말에,
‘나 잘났다’고 토를 다는 것이 ‘우쭐한 건방짐’으로 비칠듯 싶었던 것이다. 그도 떠난 사람인데, 그의 딸은 지금 어찌됐을까?
그러나 아직도 내게 소중한 만남은 있다. 그 이야기를 하려니 고민이다. 만남 속의 그들이 글을 읽을 터인데, 침 바르며 아부할까? 아니면,
마구 지꺼려댈까? 그러다가 그들이 나를 버리면…? 그것도 팔자소관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 걱정도 팔자이고…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걱정까지 싸짊어지 듯하는 것을 주변에서 안쓰럽게 생각할 때 이르는 말이다. (중략)
동양만 그런 것이 아닌가 보다. 어니 젤린스키는 ‘모르고 사는 즐거움’이란 책에서 대개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고,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며, 22%는 무시해도 될 만큼 사소한 것들이고, 4%는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며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바꿔 놓을 수있는 일에 대한 것이니 굳이 얘써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중략)
걱정도 걱정 나름인데 특히 문제는 ‘남 걱정’이다. (중략) 남 걱정은 하면서 남 도울 생각은 애초부터 없는 것도 문제다. 그저 ‘네가 얼마나 하는가 보자’는 심사가 깔려있는 게 ‘남 걱정’의 진상이다.
만남 1: 5년째 계속되고 있는 세부부의 모임이 있다.
2-3개월에 한번씩 만나지만, 병원에 다닌다는 핑게로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8개월이 지나 버렸다.
모임을 기피했던 나만의 진짜 이유는 비밀로 하고,
음주가무 없는 부페 식사를 했다. 아낙들은 희희낙락했지만, 남자들은 술이 없어서인지 오로지 식사 삼매경에만 빠졌다.
남녀의 차이라고 생각하다가, 읽은 컬럼이 생각났다.
대화 소재 중 가장 많은 것이 ‘다른 사람 이야기’라고 한다. (중략)
사람에 대한 대화가 그많큼 많다는 것은 인간의 사회성을 가르킨다. (중략)
문제는 타인에 대한 이야기가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일 때가 많다는 점이다. 칭찬이나 축하, 이해, 동의와 같은 밝은 분위기보다 험담, 질시로 흘러가가 일쑤다.
8개월만에 만났지만, 세 남자가 떠들며 험담할 ‘다른 사람 이야기 거리’가 없어서는 아닐까? 그렇다.
어릴적 친구는 언제 만나도 할 말이 많지만,
늦게 만난 우리들에게는 셋이 모두 아는 ‘다른 사람’이나 서로의 추억이 없다. 그러니 술 없이는…
늦게 찾은 우정에 재 뿌리는 소리?
만남 2: 마켓을 다녀온 아내가, 얼굴에 화색을 띠우며 말했다.
‘김
xx씨를 만났어. 얼굴이 하나도 안 변해서 금방 알아보겠더라.’라고…
형의 친구인 그는,
친형보다 더 가까운(?)
형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또,
그의 부인과 형수가 대학 동창이고, 형수와 나의 아내가 동창이고…
총각시절 비실대던 시절부터 미국에서 다시 만나서 보낸 후의 10여년간 형을 괴롭(?)혔지만,
싫은 내색 한번 안했던 것같다.
형은 한국으로 역이민했다가, 10년만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이 글을 읽을텐데…침도 안바르고 아부의 글을 쓰고 있나?
각설하고…
넷이 식사를 했다.
예전에 무지(?) 맛있던 식당이었지만, 이번에는 못먹을 정도이었다. 그러나 식사가 대수랴?
다른 사람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식사 후 형네 집에서 2-3시간을 더 떠들었다. 남의 집에서 30분을 못넘기는 나인데…
물어 보는 다른 사람 소식중 대답하기 곤란한 부분은 얼렁 뚱땅 넘기다 보니, 형이 나처럼 곤란해 할 사람의 안부는 생략했다. 그래도 다른 사람에 대한 궁굼증은 아직 다 해소되지 않았기에, 다음에도 할 말이 많을 듯 싶다.
살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의외로 ‘인간관계’라고 대답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관계가 어쩧게 금이 가기 시작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종종 ‘서운하다’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불쑥 올라올 때 부터인 것 같다. (중략)
서운함을 푸는 방법은 서운한 마음이 처음 올라왔을 때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의 방법’과 ‘대화를 통해 푸는 방법’이 있다. (중략) 내가 나의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왜 자꾸 상대에게 기대려고만 하는지 살펴보자. 대화를 통해 푸는 방법은 서운한 마음이 올라왔을 때 쌓아두는 것이 아니고 초기에 표현하는 것이다. (하략)
내가 인간 관계에서 실패한 이유는,
서운함을 푸는 방법의 결여에 있었나 보다.
나를 싫어하면 멀리했고, 내가 싫으면 그냥 끝이었다. 싫다는 사람 잡을 생각은 절대로 안했고, 내가 잘못했으면 스스로 물러 섰다.
앗뿔사! 인생 황혼기에 고쳐본 들, 모두 사라진 후이다.
그래서 또한번 팔자 타령을 해본다.
07/20/2010 Grand Can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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