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舊正)에는 Laughlin으로 여행 예정이어서, 일찌감치 형과 형수의 산소를 다녀왔다.
찾아와야 할 자식들은 한국에 있으니, ‘올해는아무도 안오나?’
하고 누워서 속삭이고 있으리라. 작년에 가서 보니, 한국의 산소처럼 성묘는 필요없지만 동판은 닦아드려야 할 것
같았다. 1년만에…
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다녀온 지 30년이 넘었다. 예전 같으면 불효 자식 소리를 들으리라. 한국에는 다른 형들과 조카들이 있으니, 나 하나쯤 빠져도 부모님은 별로 개의치 않으시리라.
형이 돌아가기 훨씬 전, 형수의 산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다. ‘자식들은 한국에 있는데, 두분이 이곳에서 쓸쓸히 계실 이유가 있겠냐’는
나의 권고에 아무 결론도 없이 형은 세상을 떠났다.
아내는 육신(肉身)의 수명이 끝나면 장기 기증과 의학용으로 쓰라지만, 난 아직 미정이다. 죽은 사람이 뭘 알랴마는, 수술대에서 난도질 당한다는 것이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화장 후
자주 갈 수있는 곳에 재를 뿌렸으면 좋겠다’는
나의 말에, 아들은 엉뚱한 말을 했다. ‘내 맘대로 할꺼니까, 아빠는 신경 쓰지 마!’ 라고… 생각해보니 맞는 이야기인듯 싶다. 묘지는 산
사람들을 위해서 있을 뿐이다.
운전 면허에 장기 기증 표지를 부칠 생각이다. 먼저 가는 사람은 남은 사람의 뜻데로 이고, 나중 가는 사람은 아들 뜻에 달려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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