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anuary 1, 2014

자선(慈善)과 적선(積善)

작년(어제) 마켓 입구의 자선남비내용물() 너무도 부실했다. 그래서일까? 종치는 사람의 얼굴에서는 활기가 사라진듯 싶고, 종소리도 예전같지 않다.

자선(慈善)이라는 말은 사라져가고 대신 기부(寄附)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기부 남비 이름을 바꾼다면 어떨까?  ‘티끌모아 태산격인 한두푼 모금에 기부라는 말을 부치기는 너무 거창할듯 싶다
반면, ‘한푼줍쇼!’ 연상시키는 적선(積善) 남비라는 말은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
자선이건 적선이건, 거부부터 하는 내가 이런 말을 꺼내는 것조차 웃기지만

2010 Little Rock Dam, Palmdale
사전적 의미로 자선은 소중한 주는 것이고, 적선 구걸에 대한 단순한 응답이란다.
다른 나눔을 의미하는 말로, 기부 그리고  사회 환원 떠오른다. 그러나 말들은 게이츠의 사회 환원을 연상시킬 정도로 거창해서 마음에 안든다. 여유있는 자의 넘치는 부분을 덜어내는 것이니,  돈이 소중해도   ‘소중한  주는 것은 아니다.
적선 또한 그렇다. 홈리스, 부랑자등은 넘쳐나지만 살아남기 위한 구걸이 아니다.  주고 싶지 않아도  반강요에 의한 구걸을 겪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허허…  이것도 구걸일까?
중학교 시절에 선생님이 말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거지에게 적선을 하면, 내가 낳다는 우월감 그리고  베풀었다는 만족감을 돌려준다고그래서 나는  프리웨이 입구의 홈리스들에게 아무 것도 안준다. 도둑맞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쪽박에 밥한술의 적선 대신 컵에 술이나 마약 돈을 보태줄 수는 없다.
2010 Placerita canyon
인터넷에서 적선 검색하다가  찾은 글이다.
거취가 없이 남에게 구걸을 해서 먹고사는 사람.
기실 이러한 거지라는 직업은 사회가 산업화 되기 전까지는 매우 자연스러운 직업군 하나였다. 6.25 전쟁 세대만 해도 동네를 해마다 들르던 거지들을 기억하던 사람이 많다. 사회가 본격적으로 사람을 노동력으로 분류하기 시작한 산업시대 무렵부터 '노동하지 않는 것이 '라는 개념이 널리 퍼져나갔고,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거지들이 원하지 않는 직업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처음에 서술된 거지의 국어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일단 지하철 대다수 거지들은 거지가 아니다 결론을 얻을 있다. 사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찬송가를 틀며 바구니를 들이대는 장님이나 불구자들도 거지의 범주에 속할 지는 미묘하다. 대체로 이런 거지들은 조직폭력배 비호를 받고 그들의 용돈벌이를 하는 경우가 상당수인데다가, 간혹 거지 일로 부자가 경우도 있다.
가끔은 자신이 직접 구걸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구걸을 시켜 일정액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럴때 구걸을 대신하는 자를 앵벌이라고도 한다.

자선(慈善) 적선(積善) ()에서 비롯되니, 순수한 의미의 () 고향만큼 그립다

12/30/2013 Griffith Park
 2013년에 쓰기 시작한 글을 2014 새해 아침에 끝내고 있다. 희망찬 새해를 기대할 나이도 아닌데 어떠랴!!!!!!!!!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가슴 속으로 부르면서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 처럼
작기만한 기억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가슴속에             아무것도 찾을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 오지만        떠나간 내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난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줄 알았는데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점점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가슴속에             아무것도 찾을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 오지만        떠나간 내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난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것도 아닌데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