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uly 10, 2012

돈의 맛이란? (Rustic Canyon, Will Rogers SP)

‘더워서 산에 가기는 …’ 하고 망서리던 아내도, Rustic Canyon 은 OK 이란다. 숲속 계곡 물이 사시 사철 흐르는 곳이다. 오늘이 네번째.


새삼 설명도 필요 없는, 가슴에 와 닫는 컬럼을 소개한다.
영화 홍보 기자회견 중 여주인공 김효진의 대답이 재미 있었다. 난생 처음 번 돈으로 평소 먹고 싶었던 빵을 실컷 먹었는데, 정말로 맛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빵의 맛이 돈의 맛, 그것이 행복으로 연결되는 구도이다. 
그렇다면 빵을 사먹으면서 느꼈던 행복감은 얼마나 오래 갔을까?  빵을 살 수있는 경제력을 갖추고 나면, 빵의 맛은 이전 같지 않게 된다. 빵은 빵일 뿐 돈의 맛도 행복의 맛도 아닌 때가 온다. (중략)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대니얼 커너먼의 이론을 빌리자면 연소득 7만 5000달러까지이고, 이 선을 넘어서면 돈과 행복은 직결되지 않고 때로는 적이 되기도 한다. 처음에 행복을 주던 돈이 왜 그 효력을 잃어버리는 것일까? 빵이 더 이상은 감동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돈의 문제는 중독성이다. 한번 돈맛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고, 돈에 눈이 멀고 만다. (중략)

정신없이 달려온 삶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를 필요가 있다. 내가 달려가는 방향은 ‘돈을 향한 것인가?’ 아니면  ‘행복을 향한 것인가?’  내가 추구하는 것은 ‘돈의 맛인가?’ 아니면 ‘행복의 맛인가?’

믿거나 말거나…
미국에서 살아 온 25년 동안, 나는 행복의 한계선(?)인 7만 5000 달러를 벌어 본 적이 없다. 다시 말해서,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빵값 버느라고 급급했다.
30대에 한국에서 살던 집을 이민오느라고 급히 처분했었는데, ‘그 집만 팔지 않고 놔 두었더라면, 한푼 안 벌었어도 지금보다는 낳았으리라.’ 하는 후회 속에 살기도 했고… 돈에 관한 한, 미국에서는,  한번도 행복해 보지 못했다.

‘행복의 맛’이  ‘돈의 맛’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 치기로 생명을 부지하느라 안깐힘을 쓰며 살았는데, 어느 날 갑짜기(?)  딸과 아들의 수입이 한계선(?)을 훌쩍 뛰어 넘었다. 큰 소리치던 주위 사람들이,  (쬐끔씩)  앞으로도 ‘돈의 맛’을 볼 기회가 영영 없는 나를 부러워하는 데… 난 지금 행복한가?


또 다른 컬럼은…
부유하고 사회적 계층이 높은 사람일수록 거짓말이나 속임수, 기타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위계층보다 더 많이 한다는 최신 연구가 보도됐다. (중략)

청소년들에게서는 상위 계층이나 하위 계층의 비행 양상이 비슷하게 나타나지만 하위 계층 청소년들은 소외감과 따돌림, 필요한 것이 많아져서 비행을 저저지르는 반면 상위 계층 청소년들은 짜릿함을 맛보기 위한 모험심과 자신이 갖고 있는 힘과 지위에 대한 인식이 점점 커지면서 비행을 저지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들은 상위 계층이 비윤리적인 행동을 더 많이 하는 이유가 바로 비 윤리적인 행동 덕분에 부와 지위를 누리게 됐기 때문인지 안닌지는 흥미로운 연구 대상… (하략)

그래서 부자는 천국으로 가기 힘들다고 했고, 스님은 무소유를 외쳤나? 

한시간 만에 폭포에 도착.
점심 식사를 할 자리를 찾아서 되짚어 내려와 바위에 상을 차리다가, 눈 앞에 Trail 표시를 발견했다. 조금 올라가 보니, 잘 닦여진 Trail 이다. 왼 쪽은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해서 폭포를 목표 지점으로 삼아왔지만, 다음 부터는 Trail 따라 더 위로 올라 갈 예정이다.

Sunday, July 8, 2012

빈자리


아버지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시대가 되었다.  (중략)… 조용하지만 절제된 행동과 신중한 말 한마디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권위인 것이다.

그래도, 아버지의 권위를 찾으려고 안깐힘을 쓸 때가 좋았다.
왜 그리도 빨리 지나가는 지…   이제는 자식들이 나를 돌봐줘야 할 상대로 여기나 보다.
어느사이 나도 할아버지가 되었으니, 자식들에게 내 말은 씨도 안먹힐 터이고…
몸이 늙었지 마음이 늙었냐? 라고 노인들이 말했는데, 그 말은 사실이었다.


옛날 (?) 나 어릴적…. 일년에 한번 운동회가 있던 날은, 일가 친척과 온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먹고 마시는 동네 잔칫날이었다. 떡까지 해온 다른 친구들이 부러웠었다.  지금도 한국의 초등학교에서는 운동회를 하고 있을까?
6월달에, 아내는 외손녀의 유아원 재롱 잔치(?)에 갔었다.  ‘뭐, 대단한 일이라고 비행기까지 타고 가서 보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재롱 잔치는 껀수일 뿐, 딸과 엄마의 마음을 받아드리면서 홀아비 생활을 연습해 본다.

베비붐 시대 (1946-1964)에 태어난 10명중 9명이, 훗날 자녀와 함께 보다 부부 둘만 살겠다는 한국 뉴스를 들었다. (이곳 미국에서는 당연한 소리이지만…)  그리고 혼자 남으면 요양 시설로 가겠다고 했다. 

아내가 San Francisco 로 간지 불과 며칠만에, 난 무기력증에 빠져 버렸다. Computer 를 켜면서도, 물만 부어 놓은 설거지가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청소나 빨래는 할 필요가 없지만, 아내가 준비 해 놓은 음식들이 바닥나면…? 식당이든 마켓이든 가야하지만, 혼자 차를 몰고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상황이 그러하니 하이킹은 고사하고 짜릿한 casino조차 포기해 버린다.

훗날 혼자 남으면, 아내는 노인 아파트를 생각하지만 나는 내 집에서 계속 살겠다고 큰 소리를 쳤었다. 일주일 보내기도 힘든 나이니, 내 말이 거짓말일 확률은 90%?
딸(1997년) 과  아들(1999년)이 대학 진학하면서 집을 떠났어도,  부모 품으로 돌아 올 것이라고 믿었었다. 10년 넘게 속아 산 후에야, 우리 부부 둘만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둘중 하나가 떠날 때는,  찰나의 여유도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