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4, 2013

악처(惡妻) 만들기


새로 만한 곳을 찾다가 포기하고 보니Blog  밑천이 달랑거린다.

그동안의 Blogprint 놓은 책이 다섯권이고, USB storage 보관된 사진도 천여장의 넘었다. 불과 5-6년의 기록일 뿐인데… 
어떻게 Blog 계속 해야 지를 심사 숙고 중이다. 몇마디 글과 과거의 사진으로 blog 엮어 보지만, 너무 개인적인 싶다. 자랑은 남들에게 역겹고, 흉은

11/28/2011 Mt. waterman
각설하고….
집에서 밥을 먹는 숫자로 남편을 평가하는 유모어가 있다.
한번 먹는 일식(一食)이가 금메달, 이식(二食)이는 은메달, 삼식(三食)이는 동메달.
아내가 딸네 집에 있는 동안 경험해 보니, 한식(韓食) 남자를 괴롭게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여자에게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어쨌든 나는  금메달 이니 최상의 남편이다!
5시에 일어나서 Oatmeal Soy Milk  그리고 바나나로 아침을 먹으며  점심으로 먹을 Sandwich 준비한다. 일하지 않는3일은 이식(二食) 되겠지만, 산에 가는 점심은 거의 외식을 하게 되어서 일식(一食) 이다. 나를 위한 저녁 한끼만 준비하면 되니까, 아내는 나를 떠받들어야 한다.  


12/26/2011   Death Valley
그런데 그게 아니다.
무식(無食) 보다 일식(一食) 바람직한 남편이라던 아내였는데 내가 괜찮은 남편 임을 부정할까? 서로 티격태격하는 빈도 역시 남들 못지 않으니, 우리 부부에게 무슨 문제점이 있는 것일까?  
부부는 일심동체(一心 同體) 라지만, 36년을 살아보니 일심(一心) 동체(同體) 아니다. 부부가 동체(同體) 없음을 설명하려면 저속해지니까 생략한다. 둘이 일심(一心) 때는 거의 없고, 밀땅(밀고 댕기기) 연속이었던 같다. 마음 속에서 이뤄지니 눈에 보일 , 수술용 실리콘보다 신축성 있는 사이에서 둘이는 밀땅(밀고 댕기기) 계속하고 있다.

12/19/2011 Solstice Canyon

화이부동(和而不同) ,  ‘우리는 모두 같지 않다 뜻이다. 나라에 살고 직장에서 일한다고 같은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다. (중략
화이부동과 대구를 이루는 말이 동이부동(同而不同) 이다. 같은 화합하지 못하다니 의아 하겠지만, 사실 같은 척했지 결코 같지 않다는 말이다.
 무릇 아내들의 바가지 긁는 솜씨는 예술이다.
나의 아내와 동서고금(東西古今) 소문난 악처(惡妻) 쏘크라테스의 아내. 둘이 서로 차이가 없다. 굳이 차이를 찾는다면,  쏘크라테스와 나의 그릇이 다른 것이 이유이리라. 인내심 많은 쏘크라테스는 아내가 벽을 넘어와도 내버려 두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니 나의 아내는 일찍 접는 탓이다.
다시 설명하면
쪽박이 언제 깨질 아는 아내는, 폭발 일보(一步) 직전에서 멈춘다. (할말 후에 자신이 참는다는 아내에게, 따지며 설명하면 안되겠기에 내가 참는데도…) 

12/26/2011  Death Valley

나이 든다는 것은, 두루 두루 감싸 안으며 마음이 넓어 진다는 !  
몇년이 남았든지, 나잇값에 걸맞게 바가지를 즐기고 - 기쁜 마음으로 밀려 주면서 살련다. 이것 보통 일은 아니지만…  참자, 참아! 내가 많이 참을수록, 아내는 악처(惡妻) 된다.
내가 승천(昇天) 화장(火葬)하면,  하나라도 많은 사리를 건지기 위해서 참고 살자!!!!!!!!!!  



Wednesday, January 16, 2013

아들 이야기


컴퓨터 배경 화면으로  썼던 사진들을 곁들인다.

Blog 올릴 글을 준비할 때마다, 이야기나 자식 이야기는 무척 조심스러워 진다. 못난 이야기는 얼굴에 똥칠이고, 잘난 이야기는 티나는 먹칠이다눈만 찔끔 감으면 끝인 이야기와 달리, 자식 이야기는 공인된 팔불출로 욕을 먹겠고…  참으면 참을 수록 입은 간질거린다.
2009 Red Rock Canyon State Park

수차 언급했지만, 나는 형만 여섯이었다. (반은 세상을 떠났음.)
잊을 수없는 형들의 은혜(?), 자라면서 얻어 입은 옷들이다. 어머니가 꿔매 놓은 양말을 포함해서, 변변한 옷들이 차례까지 흘러올 없었다. 6.25 전쟁 나이 4살이었으니, 옛날을 아는 분들은 고개를 끄덕이리라.
그러나 지금은, 세상 많이 좋아져서 얻어 입는 옷도 기똥찬 새옷들이다. 10년만에 점퍼를 꺼내 입고 담배피러 밖에 다녀오니, 가족 사진 아들이 같은 옷을 입고 웃고 있다.
2010 Vasquez Rock

며칠 아들이 사는 곳을 다녀 왔다. 김치 통등 갖고 갔던 빈그릇들을 꺼내 주면서, 아들이 (처음이 아닌데도) 쭈삣 쭈삣 내민 것은 T-shirts 7-8 이었다. 모두 비싸고 좋은 것들이니, 당연히 고마워 해야 하는데
Maker옷들은 wool 많이 섞여서 손빨래를 해야 하지만, 바쁜 아들은 그럴 시간이 없다. 그래서 줄어든 옷들은  차지가 되고, 아내의 사려깊은 빨래 처리술 덕분에 옷의 수명은 life Time으로 천수를 누린다. 낡아 헤지면 집에서 입는 옷으로 변하고나는 164cm 이고 아들은 176cm 이니, 줄어든 아들의 옷은 기막히게도 정확한 싸이즈이다.
(Computer 자동 번역이 개판임을 다행으로 여긴다. 단어 번역만으로는 결코 이글을 이해 못할터이니만일 아들이 이해 한다면, 옷들을 쓰레기 통에 버릴까도 겁난다. 그러면 나는 앞으로 영원히 (?) 구경 못하리라.)
07/10/2010 Grand Canyon NP


이왕 말이 김에
2008, 아들은 LA 검사가 되었다. 내놓고 자랑 하지 않아도 소문 소문으로 인사 받는 부모의 마음은, 하늘을 찌르는 기분이다. 워메 ~~~ 좋은 !!!!!!!
그러나 2년반 만에Pattern Lawyer (특허 변호사)   살겠다면서 사표를 던져 버리고 두번째의 대학원에 입학했다. 대학 전공했던 생명 공학(bio-engineering) 보다는 전자 공학(electric engineering) 필요하단다.

07/26/2010 Joshua Tree NP
못된 ! 약속했던 10일조는 고사하고, 부모 얼굴에 똥칠을 하다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남들이 검사직에서 좇겨난 알까봐 ~~하며 전전긍긍했다.
나의 Blog 찾는 친지들에게 (거짓말을 적은 없어도) 속인 것을 사죄한다.
10/17/2010 Mono Lake Tufa

3 걸릴 코스를 1 반만에 끝냈고, 학교 다니는 동안은 인턴도 아닌 정식 직원으로 UCLA 특허팀에서 일하면서 학비와 경력을 이어갔다. 4.0 근접하고 졸업하는 늙은(?) 학생에게, 학교에 남아 달라는 교수의 부탁(?) 일언지하에 뿌리쳤다. (대학때 생명공학을 전공했으면서 변호사가 이유는, 억세게 운이나 따라야 노벨상 받는 교수로 연구실에 파묻혀 사는 것이 싫어서 이었다.)
10/12/2010 Malibu Creek SP
그래도 아들이 검사일 때가 목이 뻣뻣 했었다.  직장인일 뿐인 것이 미국 검사임을 알면서도, 나는 이민 1세대이어서 머릿속에 미련이 남아 있다.  
한국 검사처럼 검사요!’ 소리도 못하니 Power 없어서 뇌물도 없고 한국의 검사 성추행은 상상도 못하는 미국 검사인데국가의 청렴도를 느낀다.
직장에서의 봉급이 검사의 두배이지만, 내게 바치는10일조는 쬐끔 올랐을 뿐이다. 세금이 많아졌다나…  2년만 기다리면 배로 올려준다지만, 내게 남아 있는 날들은 얼마나 될까?  (지금 녀석이 주는 모두 결혼 자금으로 되돌려 생각이다.)   
3/7/2011 Nojoki Falls
에라, 모르겠다.
2 결혼 기념일겸 구정에는 라플린으로 가서, 절제하느라 놀음이나 싫컷 하다가 오련다. ‘아빠하고 싶은 데로 하고 살라 아들의 뜻에 따라서, Hotel 예약과 아들에게 e-mail 통보를 서두른다.